-4반에 전학생 왔대!

-근데 나이가 스무살이래.

-헐, 일년 꿇었어?

-몰라. 사고 쳤다는 말도 있고.

-근데 얼굴은 안 그래 보이는데.

-야 생긴 걸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

-4반 애들은 걔한테 뭐라고 불러? 형님?

-아니야 그냥 이름 부르던데?

-헐? 어떻게??

-스무 살이란 거 구라래. 누가 소문낸 거야?




며칠 전에 전학 온 전정국은 공부에 찌든 연화고 3학년들 사이에서 최고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어디서부터 소문이 잘 못 난건지는 모르겠는데 전정국=20살 이란 소문은 아직도 3학년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가 되었다. 편의점에서 민증 내고 담배 사는 모습을 봤다든지, 클럽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다든지, 지갑에 운전면허증이 있더라 하는 소문은 안 그래도 고요한 전정국을 더욱더 신비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같은 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정국에게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이 없는 나는 (사실 말 붙일 만한 접점이 없다) 군계일학 같은 모습으로 고고하게 앉아 있는 그를 힐끗 쳐다보는 게 전부였다.




에어컨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 담임 덕분에 탈탈거리며 열을 뿜어대는 선풍기가 위태롭게 고개를 꺾어대고 있었다. 창문으로 밀려들어오는 바람이 뜨뜻미지근하다. 이걸 계속 열어놔야 되나 닫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귀를 스치며 불쑥 나온 팔뚝에 깜짝 놀라 옆을 보니 전정국이 창문을 닫고 있다. 



'어...' 

'에어컨 틀어야 될 것 같아서.'

'아...'



주르륵 닫히는 창문 틈으로 마지막 바람 한줄기가 전정국의 포슬한 머리카락을 한 번 휘감고 사라진다.



'되게 잘생겼다 너.'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 그의 기분을 움직였나 보다. 입술을 꾹 다물고 볼우물이 살짝 패이게 웃던 그가 이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박지민! 서 있는 김에 에어컨 좀 틀어라!' '어, 어 그래.' 반장 말에 후다닥 에어컨을 가동 시키고 다시 전정국을 보는데 늘 고고해보이던 모습이 어쩐지 외롭게 느껴지는 건, 필시 내 오지랖일 것이다.





**



체육복 상의를 빌리느라 시간이 늦어졌다. 기다려주지도 않고 홀랑 튀어버린 친구놈들을 속으로 욕하다가 후다닥 교복 셔츠를 벗었다. 아이, 단추가 왜 이래! 마음이 급하니까 단추도 말을 안 듣네. 손가락에서 미끄러지는 단추를 잡아 뜯듯이 열다가 대충 세 칸 정도에서 타협을 보고 머리 위로 훌러덩 교복을 벗어 젖혔다. 



'아, 아야야!'



머리카락 어디쯤에 걸린 단추 덕에 교복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리에 덮어 쓰고 있는데 뒷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자 뭐하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던 전정국이 느릿느릿하게 체육복을 갈아입었다. 



'야, 나 이거 좀 도와줘.'



머리에 교복을 터번처럼 두르고 비척대며 전정국에게 다가가자 경계하는 눈으로 나를 본다. 



'머리카락에 단추가 끼었어.'



하는 말에 내 정수리를 내려다 보며 손을 움직인다.



'살살, 아, 아야...'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엄살을 부리다가 눈앞에 박혀있는 [전정국] 명찰에 시선이 사로잡혔다.



'근데 있잖아.'

'......'

'너 진짜 스무 살이야?'



내 질문에 이렇다 할 반응 없이 계속 머리카락만 만지던 전정국이 정리가 다 됐는지 셔츠를 들어 올리곤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가자. 늦었다.'





**



침묵은 긍정이라고 했던가. 아니면 아니라고 했을 텐데 굳이 부정하지 않고 말을 돌리던 전정국으로 인해 의심의 꼬리는 길어져만 갔다. 사실 전정국이 열아홉 살이든, 스무 살이든 그게 나에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때 아닌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그의 행동에 자꾸만 관심이 갔다.



바람의 전학생은 옆건물 여학생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여자애들은 틈만 나면 운동장 반대편까지 내려와서 전정국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했다. 평소엔 얼굴 탄다며 스탠드 근처에도 안 나오던 애들이...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이었지만 운동장을 38선 경계로, 삼엄한 경비 속에 건물을 나눠서 사용했다. 이럴 거면 남녀공학의 의미가 있나요?? 라며 따지던 반장은 차라리 운동장에 담장 하나 세워놓고 남고, 여고로 나누는 게 더 설렐 것 같다며 운동장에 담쌓기 운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교내에서 여학생들과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은 운동장과 강당, 식당이었다. 운이 좋으면 수업이 겹칠 수도 있고. 우리 반은 3학년 중에선 유일하게 여학생들과 체육 수업이 겹치는 반이었는데, 다른 반 애들은 그런 우리 반을 보며 3학년 끝날 때까지 모든 운을 체육시간에 다 쓸어 담았다고 입을 모았다.




'꺄, 저 오빠가 전학생 오빤가 봐.'

'대박, 헐, 헐.'

'어떡해! 대박 잘생김!'

'아이돌 아니야?'



옆건물 1학년 여학생들의 생기발랄한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배구공을 주우러 오는 척 하면서 전정국 근처를 맴돌던 녀석들은 전학생 오빠가 배구공을 주워주자 깨방정을 떨며 자기들 진영으로 돌아갔다. 핫참.. 뭔데 귀엽고 난리냐.



'인기 많아서 좋겠다?'

'......'



비꼬려던 건 아닌데 대답 없는 전정국 덕분에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찬 남학생1이 된 것 같다. 에잇! 겸연쩍은 기분에 괜히 농구공을 바닥에 크게 한 번 튕기다가 삑사리를 내고 멀어지는 공을 바라봤다. 전정국 발 아래로 데굴데굴 구르던 공이 큰 손에 안정감 있게 들린다.



'패, 패스!'



그렇게 주워주면 내가 꺄아~ 할 것 같으냐!



퍽, 하고 공이 손으로 날아왔다. 택배는 좋았으나 강도가 미스다. 손바닥에 불꽃슛을 맞은 기분에 억 소리를 내며 공을 떨어트렸다. 데굴데굴 구르는 공이 도착한 곳은 야속하게도 또 다시 전정국의 발이었다.



'내가 갈게! 던지지마!'





**



손 보여? 내 손 보이냐고? 벌겋게 익은 손바닥을 눈앞에 들이대자 전정국의 눈이 가운데로 몰리며 한 발 뒤로 물러선다. '니가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책임져라.' 하고 매점으로 전정국을 끌고 갔다. 코코팜 두개를 고르고 전정국에게 니가 사는 거지? 하고 돌아보자 좀 어이없어하는 표정인데 별 다른 액션 없이 지갑을 꺼낸다.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계산을 마친 전정국이 잔돈을 거슬러 받으며 정리를 한다. 



'지갑 구경해도 돼?'

'안 돼.'

'아 왜에...'

'까불지 마라.'



하고 지갑을 뒷주머니에 쏙 넣은 그는 내 양 손에 들려있는 코코팜 중 하나를 쓱 빼가더니 경쾌한 소리를 내며 뚜껑을 열었다. 헐 뭐지, 방금 전정국 되게 형 같았는데.



'학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네.'



하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전정국은 전혀 아쉽지 않은 얼굴로 코코팜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챙캉-하며 분리수거함에 빈 캔이 빨려 들어간다. 아메리카노, 그건 무슨 맛으로 먹는 거냐? 전정국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어울리는 것 같으면서도 안 어울리는 것 같은 건 아마도 전정국이 교복을 입고 있어서겠지?





**



하루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많은 교류가 전정국과 나 사이에 오갔다. 단추에 낀 머리카락을 빼주고, 농구 패스연습을 하고,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먹고... 이게 다 박지민의 친화력 덕분 아니겠어? 


야자를 하지 않는 전정국이 가방을 정리한다. 우리 반은 정말 특별한 사유가 아닌 이상 야자 불참은 하늘의 별따기 보다 어려운 일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담임의 철벽수비를 가볍게 넘긴 전정국은 야자에서 제외된 모습마저 그의 신비주의력을 높여주는 요소로 만들었다. 



'부럽다.'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멘 전정국이 내 목소리에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볼우물을 만든다.



'부러우면,'



하다가 말을 말길래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부러우면 뭐?!'



역시나 별 대꾸 없이 피실 웃던 전정국이 손가락으로 내 정수리쯤을 살짝 건드리더니 '열심히 공부해라.' 하곤 뒷문으로 훌쩍 나가버렸다.



공부나 해야지 뭐. 나도 안다고!





-



'weed'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잇못  (1) 2016.07.05
사고친 그리핀도르 애들  (0) 2016.07.01
피자집에서  (1) 2016.06.28
옥수수 니가 먼데  (0) 2016.06.22
막걸리나  (0) 201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