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은 무슨, 둘이서 무슨 노래방이에요- 하며 질색을 하던 애가 맞는가 싶을 정도다. 이 정도면 가수 아니냐? 전정국을 보는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일지 안 봐도 그려진다. 화려한 무대매너에 넋을 뺏긴 내게 전정국이 돌연 마이크를 넘긴다. 아니,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고 이 자식아! 일어나서 춤추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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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누나가 토목과 전정국이 노래를 그렇게 잘한다면서? 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대답하는 게 최선이었다. 왜냐면 전정국이 노래를 잘하는지, 랩을 잘하는지, 공기반 소리반을 잘하는지 정말로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어야지요. 내 대답에 실망스러운 얼굴을 한 누나는 너희 정말 비지니스 룸메구나? 하며 뜻 모를 소리를 했다. 아니 뭐 룸메가 룸메지, 사생활 존중해주고, 잠자는 시간 맞춰주면 최고의 룸메 아닙니까? 라고 반박하려다가 뜻밖에 부엉이형 인간의 전정국이 떠올라서 무릎을 탁 쳤다. 존나 우린 이런 것도 잘 맞다니까. 둘 중에 하나만 부엉이였다면 지금쯤 누군가 한명은 기숙사에서 방을 뺐을지도 모른다.



누나의 얘기를 듣고 나서 그런가, 전정국이 이어폰을 꽂고 있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진짜 노래잘하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가끔 낮은 목소리로 허밍을 할 때도 있는데 그 목소리가 나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기도 했다. 공기반 소리반으로 가득 찬 허밍, 좋아. 어쭈, 바이브레이션도 하네? 그러다 보면 내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있게 되는데 한 번은 머리를 감고 나와서 말리던 도중에 전정국의 허밍을 듣느라 그대로 서 있는 나를 보고 형, 뭐해요? 하며 뚝 끊기는 노랫소리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어어, 머리, 머리 말려야지'. 하며 허둥지둥 수건으로 머리를 터는데 수건으로 머리를 덮고 있어서 멍청하게 서 있었을 내 얼굴이 안 보이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 근데 진짜 아쉽네? 전정국 목소리 솔직히 좀 내 취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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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아 니가 그렇게 노래를 잘한다며?'

'누가 그래요?'

'아는 누나가.'

'형이 아는 누나도 있어요?'

'이거 왜이래? 지금 내 폰에 저장된 누나만 해도,'



핸드폰을 꺼내드는 나를 보며 왜 저렇미? 하던 표정의 전정국이 '별로 안 궁금한데요.' 라고 해서 조용히 주머니에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새끼...



'암튼, 너 진짜 노래 잘해?'

'아니요.'

'잘 하는 것 같은데.'

'못 하는데요.'



어 그렇냐. 틈도 주지 않고 대답하는 전정국이 얄미워서 입술을 삐죽이는데 '전 못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 한다고 하긴 하더라구요.' 하는 녀석의 얼굴이 매우 평온하고 순진해보여서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니까 그 뭐냐, 인기 최고인데 나는 몰라, 인기가 되게 많은데 내성적이라서 관심이 없어, 나는 몰라. 뭐 이런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웃기긴 한데 사실 이 말이 사실이기도 한 사실이 내 기분을 조금 꾸릿하게 만들었다.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이라는 말이 이렇게나 많이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 잘생김과 훈훈한 하드웨어를 갖춘 전정국은 펌핑된 갑빠가 무색하게도 낯가림이 심했고 내성적이기도 했다. 처음 룸메가 되었을 때 쏟아질 듯한 큰 눈망울을 하고선 '서, 선배님, 무슨 과세요?' 하던 새내기 전정국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뭐, 지 침대 정리 안 되는 날엔 내 침대에 떡 하니 누워서 어쩌라구요? 하는 눈망울로 변했다는 게 사실이고. 


전정국의 낯가림 탈출은 술 냄새와 꾸질꾸질함의 범벅으로 이뤄졌었다. 신입생 환영회를 갔다가 술이 떡이 돼서 기숙사로 온 전정국이 신발장 앞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해서 안쪽으로 밀어 넣고 내가 그 자리에 누운 건 다시 생각해도 수치스러운 술주정이 아닐 수 없다. 알람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눈 떴을 때 옆에서 같이 일어난 전정국이랑 눈이 마주쳤었다. 좁아터진 신발장 앞에 성인 남자 둘이가 몸을 구겨 넣고 맞이하는 아침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잘 잤냐?' '네, 형은요?' '존나 잘 잤지.' 하고 따봉을 해보이자 퉁퉁 부운 얼굴로 상큼하게 터지던 녀석의 웃음이 잊혀지지 않는다. 






**



편의점 앞에서 막걸리를 말고 있는 전정국을 붙잡은 건 정말 충동이었다. 뭐 나도 일단 술이 좀 들어간 상태니까.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르는 녀석의 손을 잡고 정국아 노래방 가자!! 하고 패기 넘치게 외치는 내 입을 종이컵으로 막은 전정국이 동기들에게 '먼저 일어난다.' 하고는 막걸리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내 입술에서 종이컵을 분리시켜 준다. 쩝쩝. 아 달짝지근하다. 



'젼구가!'

'왜요.'

'노래방 가자, 노래바앙!'

'노래방은 무슨, 둘이서 무슨 노래방이에요.'

'젼젼극.. 너 노래 잘하는 거 내가 다 알고 있는데...'

'형이 어떻게 알아요.'

'젼젼극 목소리는 천상의 아리아임다! 쟁반위의 옥구슬이고요! 날아가던 꾀꼬리도 떨어뜨,'

'아 알았어요! 술만 마시면 목소리 겁나 커.'

'그래서 싫어? 나 목소리 커서 싫어??'

'누가 싫대요?'



필터링 되지 않고 봇물처럼 쏟아지는 말에 피실피실 웃던 전정국이 갑자기 어느 건물 계단으로 나를 이끈다. '어, 어어, 어디 가는데에?' '노래방 가자면서요!' 



아, 그랬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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