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쩡구기 어딨니? 정국아~!
벌컥.
- 어..?
- 조용히 좀 해요 오빠!
- 우리 정국이 왜 저러고 있어? 옆에 호석이 형이네?
- 이번에 삼일 내내 야작했거든요.
- 아...!
- 그것도 몰랐어요?
그래서 삼일동안 연락이 코빼기도 없었구나, 우리 정국이. 말을 해줘야 알지... 시벌... 오늘 뭐 하냐고 물어보는 말엔 형이 알면 어쩌게요? 하는 송아지 같은 눈망울로 쳐다보곤 했으니까. 프로젝트니 야작이니 하루하루가 바빠서 내 얼굴이나 기억할란가 모르겠다 킁. 어휴 저 고꾸라진 고개 좀 봐.
- 야 전정민!
- 아 왜요!
- 뭐 쿠션이나 그런 거 없냐?
- 뭐래요.
- 아니, 니네 오빠 좀 편하게 누으라고...
하며 급 자신감을 잃는 목소리가 내가 듣기에도 찌질해보이는데 저 불여시가 듣기엔 어떨까 싶어진다. 전정민은 전정국을 향한 내 불타는 마음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목격자이자 동시에 도움이라곤 1도 안 되는 조력자이기도 했다. 공대 건축학과에 그렇게 잘생긴 애가 있다는 소문은 여초과인 우리 과에도 자연스럽게 그 위용을 떨쳤었다. 그 잘생긴 애가 우리 동네 전정국일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안타깝게도 1학년때부터 과제에 치여 살던 전정국은 무한체력이었던 과거의 영광이 무색할만큼 과제에 쩔어 살았다. 언젠가 퀭한 송아지 눈을 들어 '형 누가 건축학과 들어간다고 하면 말려요. 형 자식이 그러겠다고 하면 그냥 이민가버려요.' 라고 하며 자신의 현실을 부정했었다. 90프로의 술기운과 10프로의 좀비상태로 학교를 돌아다니는 건축학과 학회장 민윤기를 가르키면서 정국이는 '저게 내 미래에요 형.' 하며 넋없이 웃곤 했다. 그 형은 아직 살아있는게 신기하네 그래.
- 아 뭐 정 그러면 무릎베개라도 해주든가요.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코평수를 넓히는 전정민. 존나 얄밉네. 전정국 동생 아니랄까봐.
- 니가 나가야 해주지!
- 제가 뭐 잡아 먹기라도 해요?
- 니가 보고 있으면 부끄러우니까 그렇지...
- 부끄러운 줄 알면 다행이네요.
전정민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치맛자락을 팔랑이며 나를 스쳐 지나간다. 저렇게 내 옆을 지나칠때면 내 머리통 어딘가를 흘겨보며 가는데 꼭 지 키가 내 키만하다는 걸 강조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꾸깃했다.
- 이번 프로젝트만 끝내면 오빠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갈거래요.
어어? 정국이가?
- 시발시발거리면서 빨리 끝내고 지민이 형이랑 존나 먹으러 갈 거야라고 그러던데요?
어어어??
- 뭘 먹겠다는 건지 ㅎ
어어어어???
-
건축학과의 좀비같은 일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