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한가운데서 너를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가 되었다.


네 작은 손이 나의 손을 잡았을 때 사막의 메마른 모래 알갱이가 일순 부드러워졌다. 바람이 불었고 비가 내렸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온통 젖어 들었다. 부드러운 모래 알갱이를 집어삼킨 푸른 물결은 어느새 바다가 되었다. 희미한 미래를 향한 끝없는 항해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네 손의 온기가 무척이나 단단했기 때문에.


사막에 비친 달은 너무 시렸다. 차가운 공기를 베어버릴 듯 날카롭던 달빛이 두려워 밤이 싫었다. 어린 나는 버석거리는 밤공기 속에 숨을 죽이며 노래 불렀다. 건조하고 무심한 목소리는 밤의 사막과 썩 잘 어울렸다. 그것이 나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노래를 그만두고 싶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연습을 끝내고 작은 집으로 돌아가던 늦은 밤, 또는 새벽, 그 골목길에서 너는 우리 또래와 썩 어울리지 않는 감성적인 말을 자주 했었다. '달이 예쁘네.' 꼬질꼬질하게 늘어난 트레이닝복, 발가락이 삐죽 나온 슬리퍼, 덜 말린 머리카락, 아무렇게나 뒤집어쓴 모자, 어느 것 하나 감성적일 것도, 예쁠 것도 없던 우리였는데 나는 그 시기의 모든 순간들이 최초의 기억처럼 거세게 남아있다. 집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기억, 부산 집에 놔두고 온 나만한 동생이 보고 싶다던 투정, 사투리는 언제까지 쓸거냐는 시시콜콜한 얘기들. 어느 날 평소와 같던 그 일상 속에 툭 던진 진로 변경의 삐딱선에 커다래지던 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며 단호하게 나를 잡아앉히던 너를 기억한다. 내 존재 가치를 몇 번이고 거듭 강조했고, 그 후로도 끊임없이 다짐 받았었다. '너 없으면 안 돼. 니가 제일 중요 하단 말이야.'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너의 그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던 나였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해졌다. 나는 너를, 우리의 기억들을, 죽을 때까지 평생 잊지 못하며 살아갈 것이다.


마음속에 사막을 심었던 나는 조금 바보 같은 면이 있었다. 기쁨, 슬픔, 행복, 노여움이 뒤섞인 감정의 카테고리에서 무엇을 꺼내들어야 할지 몰랐던 멍청하고 어린 나를 너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감싸주었다. 너의 관심과 사랑이 나를 큰 사람으로 만들었다. 폭격과도 같던 애정공세는 나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기 일쑤였고 정신을 차려보면 푸르게 넘실대는 바다의 한가운데였다. 네가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바다라는 걸 어느 순간 알게 됐다. 가늠할 수 없는 너의 미지의 사랑에 나는 기꺼이 내 모든 마음을 바치기로 했다. 


'형, 우리 여행 갈래요?' 

'여행? 갑자기? 어디로?' 

'내가 루트를 좀 짜봤는데요⋯ ⋯,'





우리의 항해는 오늘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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