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이거...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결에 겉옷을 입을 생각도 못하고 문을 열었다. 뼛속까지 시린 겨울 아침의 찬 공기가 맨살에 닫자 팔뚝부터 소름이 쫙 올라온다.
"......누구세요?"
"아 저..."
"......"
"...저..."
저를 찾으며 우물쭈물거리는 분홍색 입술 사이로 하얀 입김이 흩어지는 걸 멍하게 보다가 곧게 뻗은 인중으로, 작은 콧망울로, 커피색 눈동자로, 솜사탕 같은 머리카락으로, 다시 커피색 눈동자로 시선을 옮겼다.
"누구세요?"
당신은 누구시길래 일요일 아침부터 남의 집 앞에서 소금 받는 아이처럼 서 계시냐구요.
"안녕, 안녕하세요. 저는... 곰인데요."
"......"
크흠......탁해진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만 살짝 내밀어 아파트 복도부터 살펴봤다. 그러니까 '몰카! 민간인 이런 모습 처음이야!' 뭐 이런 거 찍는 거 아니냐고? 텅 빈 복도로 살얼음 같은 침묵이 흐른다. 뭔데. 아...아...그러고 보니까 아직 나 꿈 속인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커피색 눈동자를 다시 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얼른 고개를 뒤로 빼고 현관 뒤로 한 발 물러서는데 조용하던 복도로 '왕!' 하고 개 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흐익!!"
"으억!"
옆집 아줌마네 짱구가 짖는 소리에 크게 놀란 듯 어깨를 떨며 현관안으로 펄쩍 들어오는 낯선 침입자를 막을새도 없이 솜사탕이 내 품에 폭 소리가 나게 안긴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목소리가 안 나온다더니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가 보다.
"진짜 진짜로 저 곰인데요! 저 개는 어디서 짖는 것인가요? 아주 큰 개인가요? 많이 사납나요?"
내 명치에 얼굴을 묻고 와다다다 말을 쏟아내는 솜사탕을 멍하게 내려다보다가 어깨를 잡고 떼내려고 했는데 너무도 필사적인 얼굴을 마주하자 손에 힘이 빠졌다.
"저기요."
"네."
"방금 그 개 되게 작아요. 손바닥 만하구요."
하면서 필사적인 얼굴 앞에 손을 활짝 펼치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난다.
"성질은 좀 못됐는데 물지는 않아요."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제가 아직 개한테 이겨본 적이 없어서요."
개한테 왜 이기려고 하는 건데?! 동물농장에 이웅종 소장님 조카 뭐 그런거냐? 쑥스러운 듯(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살풋 웃는 솜사탕이 '저기' 하면서 다시 입을 뗀다.
"제가 곰인데,"
"곰을 뒤집으면 뭔지 아세요?"
"네?"
"문이에요."
그러니까 곰을 뒤집으면 문이 되구요. 지금 저 현관문을 통과해서 그대로 나가시면 된다구요. 미친놈을 집에 들였다는 찜찜함에 얼른 솜사탕의 등을 밀어서 복도로 내보냈다.
"어어어, 저 진짜 곰이에요!"
"네 곰입니다. 당신은 곰입니다."
"진짠데!"
왠지 다급해진 솜사탕이 닫히는 현관문에 발을 터억 끼어 넣었다.
"야! 발 치워라. 죽고 싶냐?"
으르렁거리는 내 목소리에 쫄았는지 슬금슬금 뒤로 빠지던 초록색 스니커즈가 엄지발가락 쯤에서 다시 멈췄다. 주먹만큼 벌어진 문틈 사이로 솜사탕의 커피색 눈동자가 애절하게 흔들리는 게 보인다. 아 왜 저래 진짜!
"...저 북극곰이란 말이에요. 저 되게 귀한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 못 된 거지? 꿈이라면 빨리 깨자. 초록색 스니커즈 끝을 슬리퍼로 툭툭 차며 밀어내자 커피색 눈동자에 물기가 차오른다. 아 미춰버리겠네. "북극 여행 갈거라면서요. 북극곰이랑 레슬링 할거라면서요." 점점 사그라드는 솜사탕의 목소리가 현관문 도어락 잠기는 소리에 완전 묻혔다.
"......꿈이 확실하다고."
방으로 들어가서 아직 온기가 남은 침대로 몸을 구겨 넣었다. 눈을 감았지만 모든 신경은 현관문으로 향해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꿈치곤 너무 예민한 감각이군. 음. 닫혀진 눈꺼풀로 웬 어린 북극곰 한 마리가 옹송그리고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북극곰의 앞머리가 분홍색으로 염색 돼있다. ...환장하겠네. 벌떡 일어나서 일부러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현관앞으로 나갔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아직도 안 가고 있으면 뭐 어떻게 하려고? 집 안에 데리고 오기라도 할 거냐고? 미친 솜사탕, 지가 뭔데 내 버킷리스트를 읊고 난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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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기록적인 한파소식 듣고 놀러온 북극곰 지민이. 전정국이 북극 덕후라서 그 주파수를 느끼고 지민이가 본능적으로 찾아 온 거. 지민곰은 아직 청소년기라서 개한테 못이김...ㅠ 맨날 허스키랑 말라뮤트한데 당하고 살았음. 아무튼 한국 도착 후 자기 몸 눕힐 곳이 여기라고 북극의 기운이 말해주는데 서럽게 문전박대 당하는 지민. 하지만 정국은 따뜻한 남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