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정리를 끝내자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매니저 형이 알바들 모여서 점심 먹고 오라는 말에 신나게 전정국과 박지민 이름을 불러 재꼈는데 어디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조금 전까지 둘이 물속에 떠다니는 똥을 건지니마니 하며 싸우고 있었는데. 나 빼놓고 벌써 밥 먹으러 간거 아니야? 와 그러면 진짜 완전 실망이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을텐데... 그게 진짜 일리 없어... 격해지는 기분에 씩씩대며 어린이 풀장쪽으로 돌아서 가다가 기둥 사이로 낯익은 뒤통수 두 개를 발견했다.
"뭐여 저 인간들."
둘이서 뭔 얘기를 속닥대고 있는지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영 눈치를 못채고 있는 게 웃겼다. 약품 과다 투여로 인해 강제로 맑아진 수면 아래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은 두 놈들이 세상에서 최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쬐끄만 것들이 이 형님을 버리고. 쓰읍.
"정국아 너 허벅지 진짜 딱딱하다."
"그런가?"
"어 진짜야. 내가 만져본 허벅지 중에 제일 딱딱해."
"남자는 허벅지지."
"아야! 아파! 아프다고!"
전정국이 다리 사이로 미끄러진 박지민의 손을 양쪽 허벅지로 힘을 줘서 꽉 눌렀다. 손을 빼려고 몸을 비틀던 박지민이 물속에서 버둥대다가 전정국의 가슴팍에 얼굴을 박고 미끄러졌다. 쪽팔리는지 고개를 못 들고 얌전해진 박지민의 머리통을 내려다보던 전정국이 밀착해있는 박지민의 몸을 끌어당겨 올려주는데 둘이 마주치는 눈빛이 영 이상하다. 뭐냐? 이 야릇한 분위기는...? 손에 리모컨이 있다면 음소거를 하든지 채널을 돌리든지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상황인데. 이 이상야릇한 장면을 계속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을 휙 돌아보는 전정국 때문에 심장이 멎을 뻔했다. "너, 너희 뭐하냐! 밥 먹으러 가자고! 한참 찾았네." 미친. 전정국 졸라 야생동물 같았어, 방금 눈빛. 좀전에 몸부림을 치다가 떨어진 박지민의 수건을 건져올려 물을 쭉쭉 짜낸 전정국이 그걸 다시 박지민의 머리에 씌운다. 씌워준 대로 가만히 있던 박지민이 수건 양쪽 끝을 잡고 얼굴을 가리며 어색한 걸음걸이로 물 밖으로 나왔다.
"밥 먹으러 가자, 태형아."
"어, 어. 가야지. 배고파 죽겠네."
철벅거리면서 뒤따라 나오는 전정국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총총총 가버리는 박지민과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전정국 뒷모습을 보며 왠지 밥맛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