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담력 테스트라니... 담력 테스트라니...! 애초에 보내준 플랜엔 그런 거 없었잖아! 남의 속도 모른 채 싱글벙글 웃고 있는 과대의 눈알을 찔러버리고 싶은 과격한 충동을 누르며 애써 담담한 척을 했다.



"그럼 혼자 가?"



앗 시발 목소리 떨렸어. 담담한 척하며 제일 궁금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졌는데 아무도 눈치 못 챘길 바란다.



"두 명씩 짝 지어서 갈 거야. 남녀로. 남은 인원은 알아서 짝 맞추고."



와 대박. 과대는 본인이 엄청난 사건을 만들었다는 듯이 미간을 찡긋하며 다시 웃는데 나는 엄청나게 좌절했다. 

아니 그러니까 나 누구랑 짝해...?




*



과에서도 알아주는 겁쟁이 박지민을 데리고 폐건물에 입장할 멋진 여성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어쩌다 보니 부과대와 짝을 이루게 됐는데 나를 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야 박지민."

"응."


아 또 왜...! 벌써 다섯 번째로 부르고 있다. 소중한 내 이름.



"눈 똑바로 뜨고 잘 따라와라. 소리 지르고 엉뚱한 데로 튀면 죽는다 진짜?"

"알았다니까. 야 넌 날 뭘로 보고,"

"좀 조용히 해줄래? 자고 있는 귀신 다 깨우려고 그래?"

"알았어. 미안. 그런 끔찍한 말은 하지마."



미션을 가장 빠른시간에 끝내는 팀에게 엄청난 상품을 준다고 했다. 부과대의 작은 손에 야무지게 쥐여진 손전등이 어두운 복도를 소름끼치게 갈랐다.



"우리 뒷팀이 전정국이랑 이소연이거든? 걔들 오기 전에 빨리 끝내자. 동선 겹치면 우리가 질수도 있어. 귀신보다 걔들이 더 무섭다 야."



혼자 열심히 쫑알거리며 자꾸 안 들어갔으면 좋겠는 빈 방을 겁도 없이 들어가는 부과대를 슬쩍 잡았다. "뭐? 왜? 뭐 봤어?" 보긴 뭘 봐! 그런 말 하니까 더 무섭잖아. "아니 자꾸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유정아 거기 안 들어가면 안 돼?" 하는 내 말을 쿨하게 한 귀로 흘려보낸 부과대가 그럼 넌 여기 있든지! 하면서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린 방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아 쟤 진짜 왜 저러냐! 



"유정아!"

"아 왜!"

"내가 니 등 뒤를 지켜줄게!"

"지랄."



그러니까 빨리 나와...




*



부과대가 방안을 탐색하다가 반대편 복도로 나가는 문을 발견하곤 밤마실 나가는 고양이처럼 도도한 걸음으로 쏙 나가버렸다. 야! ...... 손전등 불빛이 사라진 어두운 방안을 힐끗 노려보다가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메스껍게 치밀어 오르는 속에 손끝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몸이 왜 이래? 시발 나 지금 겁먹어서 이런 거 맞지? 머저리 같은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으며 평정을 되찾기 위해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 이건 다 과대가 만들어놓은 장난이다. 농락이다. 미션이고 나발이고 돌아가면 과대의 눈알부터 찔러줄 테다. 핸드폰은 왜 못 들고 가게 한 거야! 나 죽으면 어떻게 연락하라고! 아니야 그런 생각하면 안 돼. 과대 개새끼.


부과대를 기다리며 불쑥불쑥 올라오는 무서운 생각을 누르기 위해 과대를 욕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데 복도 끝에서부터 툭툭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너무 무서우면 생각이 멎고 목소리도 멎고 숨 쉬는 것도 멎는다. 지금 내 상태가 말이다. 



"......"



점점 가까워지는 공명 소리에 온몸으로 돋는 소름을 느끼며 터질 것 같은 숨통을 더욱 조여맸다.



"유...유...유정아?"

"....."

"유..유..유...."



까맣게 어둠이 내린 복도 끝으로 겨우 시선을 주자 그보다 더욱 짙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림자와 이어진 형체를 따라 시선을 들어 올리다가 극한의 공포에 눈에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딸깍-

소리와 함께 갑자기 쏟아지는 불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눈물이 솜털마저 바짝 솟은 볼을 타고 주룩 흐르는 게 느껴졌다.



"지민이 형? 뭐 해요 거기서?"

"으...아....아아아아!"



질식될 것 같은 공포로 가득 찼던 공기를 뚫고 선명하게 들려오는 전정국의 목소리에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와 신음을 내쉬다가 소리를 지르다가 눈물도 조금 흘렸다. 아마 앞으로 죽기 전까지 저 목소리를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




"아아아아...으어어어...."



말하는 방법을 잊은 사람처럼 앓는 소리만 내는 박지민의 어깨를 끌어안고 복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나에게 거의 온몸을 기대다시피 하며 걷는 박지민이 어이가 없어서 수그려져 있는 정수리를 힐끗 내려다봤다. 뭐야 이 형 진짜. 겁 많은 사람인 건 벌써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애기 같을 줄이야.





손전등 불빛에 화들짝 놀라 온몸을 움츠린 모습이 겁먹은 새끼 고라니 같았다. 저러다가 기절할까 싶어서 박지민의 이름을 계속 불러주며 다가갔는데 바닥에 주저앉아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거리는 게 참... 얼굴은 눈물범벅에. 난리도 아니었다. 이럴 땐 뭐 어떻게 해야 되지? 왠지 안아줘야 될 것 같은데.


'그 주먹은 뭐예요? 누구 때리려고요?'

'으아아아...으어어허헝... 진짜 정국이 맞아?'

'아니면 어쩔건 데요? 때리게?'

'...그런 말 하지마. 무섭잖아..아...흐윽..'


마주 보고 앉아 찔찔 우는 모습을 잠깐 지켜봐 주다가 옷소매를 끌어당겨 지저분해진 얼굴을 대충 닦아주고, 잘 일어나지 못하길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일으켜 세워주기까지 했다.



.

.



"형 짝은 어디 갔어요? 부과대 누나 아닌가?"

"유정이! 아 나 유정이 버리면 안 되는데!"

"형이 버려진 것 같은데요?"

"아니야. 유정이 버리면 난 진짜 쓰레기..."

"그 누나는 벌써 혼자 도착했을 거 같고요. 소연이 누나랑 같이요."

"그러면 다행인데..."



부과대 누나가 걱정되는지 내 품에 안겨 자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박지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당신 멘탈 박살 난 거부터 제대로 회복하세요. 발걸음은 느려졌지만 시커먼 건물 안쪽을 감히 뒤돌아볼 생각도 못하는 박지민이 내 목덜미에 고개를 박는다. 포슬거리며 닿은 머리카락에 솜털이 솟았다. 아니 이 형 지금 끼 부리는 거야? 왜 이래?



"유정이 찾아서 가야 되는데... 나 진짜 너무 무섭다 정국아. 다시 못 가겠어. 오늘 잠도 못 잘 것 같아... 너 오늘 내 옆에서 같이 자면 안 돼?"



박지민의 얼굴에 조금 남아있는 눈물 자국을 보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형이 내가 있는 방으로 와요."



박지민이 포함된 방은 복학생 무리들과 섞여서 시끄럽고 지저분할게 분명하니까. 그나저나 이 형을 어떻게 재우지?





-



토닥토닥 재워줘...




'weed'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은 필수 요소  (1) 2017.11.08
아 박형 또 넘어졌어  (0) 2017.11.08
아따 똑같네 3  (1) 2017.10.21
서날 등신치급 했어  (1) 2017.10.20
갇힌 새  (2) 2017.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