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중
나 전정국, 오늘도 워터파크에서 힘담당을 맡으며 소처럼 일을 한다.
워터슬라이드 자유이용에 혹해서 김태형과 알바 미끼를 덥석 잡았던 내 손가락은 약품에 절은 워터파크 수질에 뿔어 매일매일 괴생명체의 모습을 갱신하고 있다.
"야 정국아. 저기 밑에 저거 뭐냐? 똥 같은데? 똥, 똥, 똥."
그런거 따위 전혀 알고 싶지 않다. 인터넷에서 괴담처럼 떠돌던 '워터파크 대변' 은 사실 괴담이 아니라 진실이다. 죡같다. 어차피 다 싸지르고 갈 거 그냥 기저귀 찬 사람들만 입장시켰으면 좋겠다.
"얘들아, 오늘 알바생 한 명 새로 들어온다. 잘 챙겨주고 잘 알려주고 잘 데리고 다녀라."
김태형과 내가 처음 일하러 왔을 때랑 똑같은 멘트를 친 남준이 형은 여전히 쓰리잘을 강조하며 입장과 동시에 퇴장준비를 했다. 부럽다. 형은 워터파크 사장 아들이다. 수질오염된 물에 손가락 뿔일이 없단 말씀.
"올, 누군데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남자였으면 좋겠다. 자고로 힘쓰는 일은 나눠야 제맛이거든.
"쟤야."
남준이 형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서 있는 남자는...
"아......"
힘 겁나 못쓰게 생긴 물렁물렁한 빵떡처럼 생긴 남자였다.
물에 들어가자마자 뿔 것 같은데요...?
내 썰렁한 반응을 눈치챈 건지 갑자기 입이 댓발로 나온 남자가 "박지민이고, 95년생이고, 잘해보자." 하며 속사포처럼 말을 끝냈다. 그리고 나서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눈치처럼 우물쭈물하더니 "그... 텃세는... 안 좋은 거야... 같이 일하는 처지에... 나 일 잘해." 하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지 소개할 때랑은 다르게 목소리가 엄청 작아져서 초집중을 하고 들어야만 했다. 텃세 안 부리는데. 촌스럽게 텃세라니, 안 그렇냐 김태형?
"마. 니 95년생이라고? 95년 몇 월 생인데??"
...... 김태형은 12월 30일에 태어났으면서 뭘 이기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자긴 10월 생이라며 족보 정리를 마친 박지민은 김태형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되게 해맑다. 나는 하루 종일 힘쓴다고 미간에 주름 자국 까지 났는데.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부표 정리를 하는 박지민을 보는데 왠지 약이 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탁탁 튀는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런 장난감 같은 부표나 모으고 있으니 웃음이 나오지.
이딴 걸 옮겨봐야 웃음이 쏙 들어간다고. 하긴 박지민은 물렁하게 생겨서 저런 미니 부표나 옮기는 게 더 잘 어울리긴 한다. 딱 쟤 사이즈잖아.
"정국이라고 했나?"
하루종일 대형튜브만 옮기고 진이 빠져있는데 옆에서 박지민이 말을 걸어왔다.
"어. 맞는데."
"아... 너 되게 엄청 힘세 보이더라. 근육이 막 장난 아니겠는데? 저걸 어떻게 다 옮겨?"
"아 뭐..."
칭찬앞에 장사 없다. 조곤조곤 작은 목소리로 감탄하는 박지민의 말에 입꼬리가 절로 무장해제되었다. 나 참.
"너도 되게 하, 하얘."
"어?"
고운 말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인지상정이라서 입을 열었는데 준비되지 않은 말이 먼저 불쑥 튀어나왔다.
"하얗다고. 물 조심하고."
되는대로 말하고 휙 돌아서 처벅처벅 물을 가르며 박지민과 멀어졌다.
"으아아아!"
부표 정리를 하며 손상된 부분이 없나 확인하고 있는데 저기 앞에서 난데없는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눈앞에 보이는 건 대형튜브에서 추락 중인 박지민이었다. 미친. 부표에서 뛰어내리며 박지민이 가라앉은 곳을 향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살을 갈랐다. 수심이 깊어서 통제하는 곳인데. 정말 가지가지 한다. 정신만 차리고 있어라 박지민. 코로 숨 쉬면 저승길 고속열차라고.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보글거리는 물방울이 보여 그대로 잠수를 했다. 약품에 절은 물속에 절대 얼굴만은 처박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 따윈 새카맣게 잊고 수압을 밀어내며 번쩍 눈을 떴다. '......' 깊은 수렁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박지민의 애처로운 몸부림이 보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멍청이. 금방 꺼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