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d

공부하기 싫다

⭐️ 🌟 2017. 1. 25. 18:17




아침부터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중도로 직행했는데 열람실이고 뭐고 자리가 하나도 없어서 결국 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럴 줄 알았다고. 새벽에 줄서야 겨우 자리 하나 찍을까 말깐데 전정국은 느긋함이 도를 지나쳤다. 처음부터 과건물에 빈강의실로 가자고 했던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열람실 데스크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웃는 놈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지도 못했다. 뭘 잘했다고 웃어. 아침부터 마음 들뜨게. 흥.


과방으로 걸어오는 내내 전공책이 어깨를 눌러서 키가 내려앉을 것 같다고 꿍얼대자 전정국이 백팩을 쑥 들어 올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가방에 벽돌 넣고 다녀요?

-아니야 정국아. 형이 요정인데 바람에 날아갈까봐 전공책으로 막아놓은 거야.

-네.



냉정하게 대답한 놈이 내 백팩 바닥을 손바닥으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걷기 시작한다. 이건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안 들어 주는 것도 아니야. 전정국의 손길에 따라 들쑥날쑥 해지는 걸음걸이가 웃기다.




과방 옆 빈강의실에 자리를 폈다. 전정국과 한 칸 떨어져서 앉을까 그냥 옆에 앉을까 짧고 깊게 고민하다가 그냥 바로 옆에 앉았다. 나는 파티션 없으면 집중을 못 하는, 쓸데없기로는 짝이 없는 예민종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정국의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는 건 오늘 이 몸이 공부가 하기 싫다는 뜻이다. 내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전정국을 힐끗 보다가 전공책으로 눈을 돌렸다.



-아.

-......

-하아.

-왜요. 벌써 배고파요?



그런 건 아닌데 괜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저었다. 영 진도를 못 나가고 뻗대고 있는 나를 슥 쳐다보던 전정국이 볼펜을 쥐고 있던 손가락으로 톡 하고 내 손등을 건드린다. 아 깜짝이야. 그리곤 연이어 내 전공책을 두 번 톡톡. 알았어. 한다고. 해! 잠깐만... 근데 내가 폰을 어디에 놔뒀더라. 부산스럽게 가방을 뒤지다가 나를 응시하는 까만 눈동자에 민망해져서 웃자 고개를 꺾으며 더 깊게 쳐다본다. 아니 그렇게 추궁하는 눈으로 볼 일이야? 그러니까 폰 진동으로 바꿔놨나 싶어서... 매너남이잖아, 나.



오, 이거 귀여운데? 새로 나온 셀카 어플 캐릭터를 고르다가 강아지 캐릭터에 눈이 꽂혔다. 나 되게 똥개 같다. ....받아라 전정국 짜잔. 집중하고 있는 얼굴 밑으로 다짜고짜 폰을 밀어 넣었다. 맥 커팅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액정을 응시하는 놈의 새카만 눈동자가 똥개처럼 반짝거린다.



-으 전정국 귀여워.

-네. 맞아요.



참나. 어이없는데 반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