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d

빨개요

⭐️ 🌟 2016. 7. 11. 22:56





"더운데 시원해요. 안 그래요?"

"어, 안 그래."



계절은 바야흐로 장마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여름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더운 건 싫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더운데 시원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전정국의 제 3의 감각세포처럼 내게 여름은 복잡 미묘한 계절인거다. 여름 향기는 좋은데 여름 냄새는 싫고, 여름의 청량함은 좋은데 여름의 끈적함은 싫고, 한낮의 매미 소리는 싫은데 밤이면 도롱도롱 우는 풀벌레 소리는 좋은 거. 



1학기 종강과 동시에 집에 내려갈 준비를 끝낸 전정국은 기숙사에 남아 느즈막히 짐을 정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아직도 짐을 싸고 있냐며 허락도 없이 내 방에 발을 들여놓았었다. 예민 터지는 룸메가 먼저 짐 빼고 집에 가서 다행이지.



-너는 아직도 부산 안 내려갔냐?

-할머니 댁에서 잠깐 놀다가 가려구요.

-그래? 할머니 댁이 어딘데?

-부산인데 되게 작은 시골 마을에 있어요. 엄청 좋은데. 형 같이 갈래요?

-으응??



그래서 지금 전정국과 함께 할머니 댁에 짐가방을 던져 놓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이다. 뭔 생각이었는지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형 근데 진짜 왜 가는 거예요?' 하며 당황스럽게 묻는 전정국에게 '니가 가자묘???' 하고 억울하게 소리쳤던 게 한 시간 전이다. 억울함에 뻥진 나를 구경하던 전정국이 '맞아요, 제가 그랬어요.' 하고 살포시 처웃는 얼굴이 얄미워서 등짝을 때렸었지. 아니 근데 무슨 슈퍼가 걸어서 삼십분이나 걸리냐고요. 모습을 드러낼 기미가 안 보이는 슈퍼를 향한 여정은 짙은 풀냄새와 등골을 적시는 땀과 터질 듯한 매미소리의 범벅이었다.





"전 스크류바요."

"난 죠스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가게를 나오자 다시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다.



"작은 마을이라묘?"

"그런데요?"

"두 번 작다간 슈퍼 갈 때 비행기 타고 가야겠다??"



내 말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꺽꺽대며 웃던 전정국이 가다가 중간에 냇가에서 발만 한 번 담그고 가자고 한다. 그러지 뭐.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스크류바를 입안에 넣고 드릴처럼 신나게 돌리던 녀석이 제 입술 어때요? 빨개요? 하곤 핸드폰을 꺼내 액정에 이리저리 얼굴을 비춰보며 부산을 떤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어, 하며 대충 대답을 해주는데 어느새 핸드폰을 집어넣고는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지민이 형, 입술이 귀엽네. 까맣고.' 하며 뻘소리를 하길래 얼굴이 빨개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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